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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키워드 2탄
    카테고리 없음 2019. 7. 13. 17:53

     

    고구려

     

    태조왕 옥저 정복

     

    고국천왕 부족적 성격의 5부를 행정 구역의 5부로 개편, 진대법 시행

     

    미천왕 한사군 중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

     

    소수림왕 불교를 수용하고 율령을 반포 태학 설립

     

    광개토 태왕 신라에 쳐들어온 왜를 물리침 그거 때문에 김해의 금관가야까지 타격

     

                       독자적인 연호 영락

     

    장수왕 남진 정책,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김 남쪽 평정하고 충주 고구려비 세움

     

                경당이라는 학교를 세우기도 함.

     

    고구려 멸망 검모잡이 보장왕의 아들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고 부흥운동을 벌였지만 실패

     

     

    백제

     

    근초고왕 부자세습으로 바꿈, 고흥에게 서기를 편찬하게 함.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임

     

    침류왕 동진으로부터 불교수용

     

    무령왕 지방에 22담로 설치하여 지방 통제 강화

     

    성왕 도읍을 사비(부여)로 옮기고 국호도 남부여로 바꿈 진흥왕에게 통수맞음

     

             빡쳐서 관산성에서 진흥왕과 싸우다 전사

     

    의자왕 대야성을 함락시키기도 했으나 말년에 술과 여자에 빠짐 ah..

     

    백제 부흥운동 복신과 도침이 백강 전투에서 끝까지 결사 항전하나 결국 실-

     

     

    신라

     

     

    신라에서 나온 호우명 그릇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있는 신라를 볼 수 있음

     

    지증왕 나라이름을 신라로 함. 내물마림간에서 왕으로 칭호 변경, 우산국 정복

     

                이사부를 시켜 독도를 품고 있는 우산국(지금의 울릉도) 복속

     

                우경을 장려하고 시장 감독 기관인 동시전 설치

     

    법흥왕 이차돈의 순교를 내세워 불교를 공인, 병부를 설치해 군사훈련,

     

                최고 관직인 상대등치하여 지배 체제 정비

     

                금관갸야를 병합하고 건원이라는 연호 사용

     

    진흥왕 성왕 통수치고 북한산 순수비 세움, 단양 적성비도 세워서 한강 깃발 꼽음,

     

                대가야정복,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함,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

     

    가야 낙랑과 왜를 연결해주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 고구려 광개토 태왕 때문에 흔들림

     

    무열왕 진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이 된 사나이 춘추킴..

     

    문무왕 매소성, 기벌포전투에서 승리 삼국 통일 (문무가 뛰어나 통일..)

     

    신문왕 진골 귀족인 김흠돌(신문왕의 장인이자 상대등)의 난을 계기로 진골 귀족 숙청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흠돌이 때문에 왕권강화 오지게함)

     

                95소경 국가 조직 완성

     

               충성과 유학 장려 위해 국학 설치

     

    95소경이란? 전국을 9주로 나누고 특수 행정 구역으로 5소경을 둠

     

    상수리 제도 상수리제도는 지방 세력가나 그 자제를 수도에서 일정 기간 머물게 함(인질)

     

    9서당 109서당은 중앙군, 10정은 지방군 여기에 고구려 백제 사람도 있었음. 민족융합.

     

    관료전 기존에 조세, 공물, 역을 모두 거둘 수 있는 녹읍을 폐지하고 노동력 징발할 수 없는 관

     

                료전을 주었음

     

    호족 신라 말에 등장한 지방세력들로 김헌창의 난으로 정신없는 수도 상황 때문에 지방에서

     

             새롭게 성장한 세력들 장보고, 궁예, 견훤이 있음

     

    6두품- 진골들은 이 지식인들을 싫어했음. 최치원6두품인데 시무책 10여조를 올려도

     

              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음. 6두품들은 신라 하대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조선의 과거제도 같은 것)를 통해 성장해보려했지만

     

              실패 그래서 호족들과 친해짐

     

    원종과 애노의 난 수도에선 진골 귀족끼리 싸우고 지방에선 호족들이 지들이 왕이라 하고

     

                              난장판에 백성들은 매우 힘들었음. 그래서 원종과 애노의 난이 생김.

     

     

    발해

     

     

    무왕 발해의 2대왕 장문휴를 보내 당의 산둥 반도를 선제 공격, 인안이라는 연호 사용

     

     

    문왕 대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함. 무왕과 다르게 친당정책을 펼침.

     

             신라와도 교류하여 신라도(길임 실크로드처럼) 도읍을 중경에서 상경으로 바꿈

     

    36문왕 때 정비된 조직으로 당나라를 따라함.

     

                 발해에는 관리를 감찰하는 중정대와 대학교인 주자감도 있었다.

     

    선왕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며 51562를 설치하고 지방관도 파견, 해동성국

     

    진대법 재상 을파소를 시켜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곡식을 갚도록 하는 고구려 제도

     

                조선의 의창도 이와 비슷

     

    정전 신라 성덕왕때 백성들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준 것.

     

             (관리들은 거기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

     

             고려와 조선 시대때는 정전을 민전이라 부름.

     

    민정문서 통일신라 시대 토지의 규모를 파악한 장부, 인구수, 특산물도 파악되어있음

     

                   고려와 조선에서는 토지를 파악한 양안인구를 파악한 호적으로 분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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